[샴고양이 입양의 날] 샤미와의 만남

저는 5년 전에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아서 약물과 상담으로 치료 중이었습니다. 그 전부터 일이 잘 안되서 힘든 시기였습니다. 담당 편집자가 정신과에 다녀올 것을 권유한 덕분에 제 문제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료 중에 빨리 낫고 싶어서 우울증에 효과적인 방법을 많이 찾아봤습니다. 그 중에 동물을 키우면 좋다는 것을 보고 고양이를 키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왜 고양이이었냐면 오래전에 지인이 작업실에 샴고양이를 데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엄청 좋아해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애교를 부렸던 고양이었습니다. 그것이 꽤 인상에 남은 탓인지 이왕이면 샴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날. 저는 다른 고양이의 입양 절차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기 샴고양이가 자기 방에서 나를 보며 폴짝폴짝 뛰는 것입니다. 그 때 눈이 맞았는데 케이지 안에서 두 발로 서서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습니다. 결국 저는 열정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아기 샴고양이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친구가 그 때 이야기를 듣고는 "샤미가 널 간택했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저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준비 안된 초보는 덜컥 집사가 되었습니다. "샴 고양이니까 이름은 샤미!"라는 단순무식한 이름은 아는 누나에게 핀잔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 핀잔 들었을 때는 이 녀석 자기 이름을 샤미라고 인식해버렸는 걸요. 샤미를 입양한 첫날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참 당황했습니다. 일단 고양이 키우는 책을 읽고 데려왔지만 집사도 고양이가 처음이었고 샤미도 집사가 처음이라 많이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어색하게 생각한 건 저 뿐이었요. 샤미는 데려온 가방 안에 넣어 준 사료와 물을 먹고는 10여분만에 나와서 방안을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빤히 쳐다보는데도 날 무시하고 새로 온 집을 탐색하더군요. 나중에 호기심 넘치고 처음 가는 장소를 무서워하지 않는 샤미의 성격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그리고 밤에 잠이 드려고 하는 내 귓가에서 킁킁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을 떠보니 샤미가 처음으로 내 옆에 와서 내 얼굴 냄새를 맡고 있더군요. 내 눈과 마주치자 샤미는 부리나케 뒤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날 쳐다보더니 그 자리에 드러누워서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4년전이지만 지금도 그 첫날 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키우는 고양이라 많은 점이 미숙했습니다. 다행이고 동네 동물 병원 원장 선생님이 책에도 없었던 팁을 많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샤미는 어릴 때부터 귀에 진드기가 많았습니다. 샾에 오기 전에 환경이 어떤 곳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집사가 많이 부족하지만 샤미의 사람 좋아하는 친숙한 성격의 덕을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우울증 판정을 받은 후에 잃어버렸던 웃음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상담 선생님도 얼굴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하셨고요. 샤미 덕분이었습니다. 이 때는 우울증도 낫고 모든 일이 잘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샤미 입양 후에 첫 구정 연휴를 맞아서 저는 샤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밥을 먹는 양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집사를 지치게 만들었던 에너자이저가 누워 잘 때가 더 많아졌습니다. 책에는 고양이가 밥을 잘 안 먹는 것은 병의 징조라고 읽었기 때문에 연휴가 끝나자마자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제가 연휴동안 관찰했던 샤미의 증상을 들으셨던 의사 선생님은 피검사를 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뭔가 불안한 느낌에 기다리면서 초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밝혀진 병명은 [고양이 습식 복막염] 걸리면 100% 고양이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치료약도 없는 악독한 병에 걸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터지려는 것을 의사 선생님이 "울지 마세요. 고양이는 집사의 감정 변화에 민감해서 불안해 합니다. 앞으로 많이 안아주고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것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고양이 복막염은 잘 못 진단 될 확률이 있기 때문에 좀 더 큰 병원에서 다시 검사해 볼 것을 권하셨습니다. 저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큰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를 다시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검사의 결과는 [고양이 습식 복막염]이라는 결과로 나왔습니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해서 벌을 받은 걸까요? 그럼 내가 벌을 받아야지, 왜 태어난지 다섯달 밖에 안 된 어린 샤미가 벌을 받아야 하나요? 누구에게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지만 우울증을 앓으면서 잊고 있던 분노라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았던 샤미는 검사를 받았던 큰 병원에서 수액을 맞게 입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양이 복막염에 대해서 열심히 검색했습니다. 그러다가 신약 GS-441524 에 대한 정보가 검색되었습니다. 중국에서도 임상실험 중인 약. 하지만 중국이기에 그런 임상 실험약을 버젓이 쇼핑물에 팔았던 나라. 그것을 구해서 치료 일기를 쓰고 있던 어느 집사분의 블로그 발견까지. 저는 그 블로그 집사 분께 쪽지를 드려서 제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습식 복막염은 빠르면 한달안에 사망이라는 정보를 본 탓에 마음이 급했습니다. 다행이도 그 집사님이 당장 급한 약을 팔아주셨고, 구할 수 있는 루트도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고양이 주사 넣는 법을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고 영상에서 알려준대로 수건으로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약이 도착하자마자 샤미를 퇴원시키고 바로 신약을 주사했습니다. 정보를 얻고, 약을 구할 때까지 삼일간 제대로 자지 못했던 저는 샤미에게 주사를 놓은 직후 깊게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 처음 본 것은. 다 비운 밥그릇 앞에서 날 보며 밥 달라고 우는 샤미의 또릿또릿한 눈이었습니다. 신약이 잘 들었습니다. 그 후 석달간 계속 신약을 구해 치료를 한 끝에 샤미는 정상 고양이 수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치료하는 동안 검사 비용이나 기타 비용등을 정말 싸게 해주셨던 동네 병원 선생님이 말하셨습니다. 샤미가 원래 먹성이 좋은 애라 병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됐을 거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건강해진 샤미는 4년 후 5.6kg이라는 우량아가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한테 더 찌면 비만이니까 조절하라고 혼날 정도로 참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컸습니다. 샤미 살리겠다고 없는 살림 팔고 빚까지 져가면서 열심히 한 탓인지 우울증은 극적으로 좋아졌습니다. 올해 초부터 약도 끊고 잠도 잘 자고 새로 시작한 일도 잘 되고 있습니다. 종종 샤미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납니다. 첫 만남 때 날 보면서 폴짝폴짝 뛰었던 것은 "날 데려가면 집사 병 고쳐줄게. 대신에 내 병도 고쳐줘."라고 했던 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고마워. 샤미야. 아빠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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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루피엄마
2022.10.02
와 복막염 치료라니... 얼마나 걱정하셨을지 상상도 안 됩니다... 우울증도 좋아졌다고 하니 넘 다행입니다 샤미랑 오래오래 행복하세용~~
샤미랑의 이야기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감동스러운 입양 스토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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